지슬 - 끝나지 않은 세월2 (2013)

Jiseul 
9.2
감독
오멸
출연
이경준, 홍상표, 문석범, 양정원, 성민철
정보
드라마 | 한국 | 108 분 | 2013-03-21



(스포일러 있음


난 제주도에 딱 한번 가봤다. 2011년 제주도에서 맞은 1월 1일 아침, 정말 강렬한 꿈과 함께 잠에서 깼을 때 창밖에 펼쳐진 설원의 풍경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엄청난 눈 때문에 렌트카에 체인이 끊겨서 고생을 하기도 했지만 제주도는 나에게 막연한 파라다이스의 느낌이었다. 이국적인 섬으로만, 평화로운 휴양지로만 바라보던 제주도.  안의 아픔에 대해서 그동안 나는 얼마나 무지했는가


'지슬'을 봤다. 제주도 방언으로 구성되어 자막까지 읽으면서 한국 영화는 아마 처음일 것이다. 6.25 시절을 겪지 않은 세대로서 낯선 제주도 방언 만큼이나 낯선 전쟁 당시의 분위기가 느껴졌다. 영화는 어떻게 해서 군인들이 제주도에 내려갔고, 민간인들을 폭도로 몰아 잔인하게 살해했는지 설명해 주지 않는다. '전쟁'이란 것이 얼마나 무자비하게 인간을 굴욕시키는, 안에 던져져서 시간들을 살아내야 했고 견뎌내야 했고 죽어야만 했던 사람들, 그들의 심리를 후벼 파며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편의 처럼 꺼내놓고 있다. 아름답다기 보다는 슬프고 잔인한 그런 시다. 영화로 인해 불편한 마음을 한아름 안게 되었지만, 영화를 만날 있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영화 '지슬' 보고 영화관을 나오면서 잊혀지지 않는 가지를 곱씹어 봤다.  


답답하게까지 느껴지는 순진하고 착한 사람들 

군인들이 마을 사람들을 마구 학살한다는 이야기가 퍼지자  마을 사람들은 같이 동굴로 피신을 한다. 영화는 동굴속에 피신하고 있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대화를 길게 보여주는데, 정말이지 평범하기 그지 없어서 시시껄렁해 보이는 그런 대화들이다. 사람들이 정말 폭도라면 어떻게 돼지 밥줘야된단 얘기, 장가는 언제가냐는 이런 얘기들이나 하고 시간을 죽이고 있을 있을까. 사람들은 피신을 해야 하는 상황에 대해 겁에 질려 있기는 커녕, 과장해서 말하자면 마을 사람들끼리 어디 소풍이라도 것만 같다. 자신들의 목숨이 위험하다는 사실도 제대로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무리에서 이탈한 순덕이나, 마을에 두고 무동의 어머니도 죽임을 당한 줄도 모르고, 그저  있겄지 하고 걱정을 않는다. 이렇게 순진하다 못해 답답한 사람들을 통해 사람들이 그동안 누려오던 평화로운 삶에 대해 극명하게 보여주는 같다. 바다 건너 일어난 전쟁 자체도 이들에게는 이전까지 크게 다가오지 못했을 것이다. 넉넉하진 않지만 마을 사람들끼리 돼지키우고 농사 지으며 살아가던 평화로운 나날들이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느긋하고 순박한  사람들 때문에 웃음도 나지만영화를 보는 내내 더욱 초조했다폭도들을 살해해야 성과를 올릴 있다는 군인들은 점점 마을 사람들을 죄여오고, 사람들은 그제서야 절망에 빠진다. 그리고 너무나 손쉽게, 너무나 비참하게 죽임을 당한다. 양심을 버리기 힘든 한 군인의 한마디.  "이 여자가 폭도입니까?"    


촘촘한 은유와 상징 

감독이 촘촘하게 남겨놓은 은유와 상징이 영화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었던 같다. 영화를 관통하는 가지를 꼽으라면 아마 제목과도 같은 '지슬' 것이다. ('지슬'이라는 예쁜 이름이 제주도 방언으로 '감자' 줄도 처음 알았다!) 가장 기본적인 '먹는 '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것이 바로 사람을 사람답게 만든다라고  (잠깐 딴길로 세자면, 사람과 가장 닮은 동물인 침팬지는 다른 침팬지와 먹이를 나누는 것을 하지 못한다.) '지슬' 전쟁통에서 상실되어 가는 사람간의 , 인간성의 상징이다. 양심과 상부의 명령 사이에서 갈등하는 군인은 아직 어린티가 나는 처녀 순덕에게 차마 총을 쏘지 못하고, 붙잡힌 순덕은 군인들에게 끌려와 폭행을 당한다. 공포와 치욕을 감당하지 못한 순덕은 어느새 총을 쥐고 군인을 쏘고, 본인도 결국 다른 군인의 손에 죽는다. 순덕의 총알에 죽은 병사의 손에는 감자가 쥐어 있다. 그는 처음에 순덕을 발견하고 차마 쏘지 못했던 병사였던 같다. 아마도 순덕에게 감자를 주기 위해 갔던 아니었을까? 저게 사는 거냐라며 차라리 순덕을 쏘지 그랬냐는 친구의 말에 그래도 살아있는 낫다고 말하던 병사는 순덕에게 자기몫의 감자를 나눠주며 위로를 건내고 싶었을 것이다


영화에서 가장 의문의 인물은 아마도 주로 물을 뜨러 다니는 병사 주정길일 것이다.( 역할을 배우는 여자인데, 여성스럽다기보다는 중성적인 느낌이다.)  병사가 지고 다니는 ''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철모를 눌러쓰고 무표정한 얼굴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눈빛이 강렬하게 다가왔다. 나는 주정길이야 말로 제주를 바라보는 바다건너 일반 사람들의 시선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순덕을 강간하고 나온 병사에게 물을 건네주고... 4.3 사건을 비롯해 제주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다른 나라일 처럼 침묵과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우리들은 어찌보면 비열한 군인들을 간접적으로 도와주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말이다. 그러나 주정길은 마지막에 비로소 양심을 찾는 인물이다. 감독의 의도가 무엇이었을까 궁금증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던 중에 인터넷 기사에서 감독의 이야기를 찾을 있었다


오멸 감독은 지난달 15 열린 '관객과의 대화'에서 "'정길' 실제로 여자다. 정길에게 '설문대 할망'이라는 제주도 신화의 이미지를 부여하고 싶었다. 설문대 할망은 500명의 아이를 낳은 거인인데 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죽을 끓인다. 그런데 힘에 부쳐서 솥에 빠지고 만다. 그래서 아이들은 고기죽을 먹게 된다" 정길에게 투영한 신화의 이미지를 설명했다.


이어 "정길이 계속 물을 길어다 놓는 자리가 바로 솥이다. 군인들은 솥으로 돼지를 삶아 먹기도 하고, 상사처럼 목욕을 하기도 한다. 어쩌면 상사도 설문대 할망이 품어야 하는 하나의 대상이 아닐까 생각했다. 정길은 군인과 주민을 함께 체감하는 인물로 그렸다. 안에 있으려면 여자라는 사실을 숨겨야 하는데, 나는 동네 오빠를 쫓아다니다 전쟁통에 데가 없어서 군복을 입고 들어온 캐릭터로 잡았다" 덧붙여 말했다SBS연예스포츠(클릭)


이 영화는 또한 4.3 사건의 희생자로서 죽어간 사람들을 위해 지내는 제사의 형식을 하고 있는데,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에서 고귀하게 받들어야할 제사 그릇들은 바닥에 나뒹굴고 있다. '끝나지 않은 세월 2'라는 부제에서 볼 수 있듯이,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위로받지 못하는 영혼들, 그리고 '강정마을'로 대표되는 계속되는 탄압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왜 제주를 평화의 상징인 채로 그렇게 놔두지 는 못하는 것일까.    


인간성을 상실해버린 인간들의 잔인한 행태를 가장 비극적으로 그려낸 카메라웍   

이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씬을 하나 꼽으라면 아마도 군인들이 무자비하게 민간인들을 살해하는 롱테이크신일 것이다. 카메라는 마당부터 방 안까지를 차례대로 쭉 훑으면서 오가고 살인귀로 전락해 버린 군인들의 광기어린 모습을 슬로우모션으로 여과없이 보여준다. 끔찍한 이 장면을 보면서 숨이 컥 막히는 듯 했고, 영화관을 나와서도 이 잔상이 오랫동안 남아서 괴로웠다. 그리고 나서는 이러한 잔인함을 택해야 했던 군인들이 한없이 안쓰러웠다. 그들은 그 안에서 이성을 상실했고, 광기라고 밖에 볼 수 없는 집단적인 분위기에 휩싸였다. 그들과 같은 상황에 놓여졌다면, 나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 라고 섣불리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발가벗겨 한 겨울 눈밭에 세워두고 찬물을 끼얹고, 밥을 굶기고... 옳고 그름은 없고 오직 '명령'만이 있는 그곳에서 감히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  인간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렵고, 거부하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감독이 얼마나 공들여 담았는지 영화의 한 컷 한 컷은 모두 오래 두고 감상해야 할 예술사진인 것 같았다. 흑백 영화의 단조로움을 전혀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카메라웍이 훌륭하다고 느꼈다. 그동안은 청록색 바다와 산이 있는 파라다이스로 떠올렸던 제주의 이미지를 흑백 필름 속에 담으면서 그 안에 스러저간 억울한 혼들처럼 쓸쓸하고 횡량한 모습을 잘 나타냈던 것 같다. '오멸'이라는 감독의 이름과도 잘 어울리게 그만의 스타일을 잘 살렸다. 제주도가 고향이고, 늘 제주에 관한 영화를 만들어온 그의 고향에 대한 아픈 사랑이 물씬 느껴진다. 


다음 번에 제주도에 가게 된다면, 아마 이전과는 많이 다른 느낌일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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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칭 포 슈가맨 (2012)

Searching for Sugar Man 
9.2
감독
말리크 벤디엘로울
출연
말리크 벤디엘로울, 로드리게즈
정보
다큐멘터리 | 스웨덴 | 86 분 | 2012-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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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있음)

 

로드리거스의 첫 번째 앨범 이름은 Cold Fact... 그러나 그의 인생은 Cold Fact가 아닌 Miracle 이었다. 바라보기만 해도 심장이 뜨거워지는 삶이었다. 한 사람이 걸어온 궤적 만으로 이렇게 큰 감동을 줄 수 있을까? 극장에 앉아서 모든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이렇게 전율을 느껴본 영화는 정말이지 오래간만이었다.   

 

그와 같은 사람이 진정한 현자가 아닐까? 물론 이 다큐멘터리는 그를 영웅화 했을 수 있고, 그의 좋은 면들만을 모아 편집했음이 분명하다. 이것을 온전한 현실로 받아들이고 그를 신격화 하는 것도 옳지 못할 것이다. 그치만, 그는... 적어도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야할, 배워야할 그런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그는 가난했다. 그는 노래를 만들고 부르고 싶었다. 그는 디트로이트 작은 술집에서 노래했다. 그는 너무나 아름다운 앨범 2장을 냈다. 그의 음악은 훌륭했지만 상업적으로 실패했다. 그는 누구도 비난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삶을 원망하지도 않았다. 여느 아티스트들 처럼 술에 마약에 망가지지도 않았다. 묵묵하게 성실하게 막노동을 하고 딸들을 키웠다. 그는 철학을 공부했다. 그는 도시의 가장 더러운 것들을 처리하는 막노동을 하면서도 그의 맑은 영혼을 잃지 않았다. 심지어 그는 그의 일을 사랑하고 자부심을 갖었다. 그의 노래는 미국에서는 철저하게 실패했지만, 우연히 흘러들어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최고의 인기를 얻었다.(보츠와나, 짐바브웨, 뉴질랜드, 호주에서도!) 그는 자신의 노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을 만났고 꿈을 이뤘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디트로이트의 그 집에서 산다. 그의 생활은 변한 것이 없다. 그의 노래가 외치는 것 같다. 세상은 지긋지긋하고 더럽고 힘들지만. 절대 너의 영혼을 팔지 말라고. 그리고 그는 그것을 공허한 외침이 아닌 삶으로 증명해냈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의 노래를 강제로 들려주고 싶은 심정이다.

영화에 나왔던 한 인터뷰처럼 외치면서.

 

어떻게 모를 수가 있죠?

이렇게 멋진 음악을?

이렇게 멋진 사람을?

 

 

 

 

 

* 덧붙일말// 카페림보로 치자면. 그는 아마도 현존하는 35세를 넘긴 림보족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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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림보

저자
김한민 지음
출판사
워크룸프레스 | 2012-11-15 출간
카테고리
만화
책소개
세상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자들의 이름, 림보. 바퀴족이 점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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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있음)


비린 자유의 냄새. 생김새 부터 범상치 않은 그래픽 노블 '카페 림보'. 책 사이즈도 그렇고 시원 시원한 그림체 처럼 메시지도 거침없다. 볼 때는 막 웃었는데, 책을 덮고 나서부터 웃을 수가 없다. 불편해서. 나 자신은 바퀴화(Cockroachification)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이 책은 철들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고민하고 있는 이를 어루만지며 위로를 건내는 친구가 아니다. 정신이 번쩍 들도록 세차게 뺨을 휘갈기는 친구다. 그래서 마음이 이렇게 얼얼한가 보다. 아마도, 요즘 한창 유행하는 '힐링'과는 아마 정 반대의 치료약일 것이다.


이 책에서 꼬집고 있는 바퀴족의 습성은 어떻게 보면 직관적인 작가의 호불호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의 본질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 단단한 뿌리가 서로 얽혀 있어 쉽게 뿌리뽑히지 않을 녀석들이다. 이기심. 획일화. 미디어 중독. 우리 사회가 비인간적이 되어가는 이유를 디테일한 예시를 들며 조목 조목 따지고 있다. 다 모아놓고 보니 정말이지 심각하다. 팍팍한 한숨이 나오는 현실. 


바퀴족으로 살아야 할 이유들은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지만 (좋은 거 잘 먹고 좋은대서 잘 자야 행복하니까? 사랑하는 사람(사랑해야만 하는사람/ex부모)이랑 갈등을 빚기 싫어서? 아름답고 예쁜 것만 봐야 마음이 즐거우니까? 고정관념이란 세상을 해석하는 효율적이고 편리한 틀이니까? 남들의 부러움을 받고싶어서? 지루한 시간 '생각'이라는 신체(뇌) 활동을 하기 귀찮아서? 나 먹고 살기도 바쁘니까? 바퀴족이 다수니까? 적당히 하고 다른 사람들과 조화롭게 살아야하니까? 나중에 후회할까봐?) 


그런데 반해 림보족으로 살아야할 이유는... 


살아야할 이유는? 


림보족으로 살아야할 이유는 무엇일까?  


림보족의 생존 목적은 '내가 되는 것' 이라고 한다. 아마도 그것은 '바퀴족의 추한 모습을 하고 있는 나(A)'를 '바라보게 될 나(B)'를 견딜 수 없어서가 아닐까. A와 B를 일치시킬 수 없을 때 합리화 과정(바퀴족으로 살아야할 이유들을 만드는 것)이 시작된다. 인지부조화의 해소. 합리화 과정을 진행시키며 A는 B를 점점 잠식하고, 결국 B는 사라진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철이 든다는 것은 결국 B를 지우는 과정인 것 같다. 자신은 체게바라처럼 살수는 없다는 패배의식과 인지부조화의 불편한 마음을 늘 안고 사는 것. 그것이 너무 힘들어서. 자살하거나 바퀴벌레가 되거나 결국은 마찬가지다. 자살한다는 것은 B를 없애버리는 것이며, 바퀴족이 된다는 것도 결국 B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숨을 구멍이 없다는 것은 더이상 합리화할 수가 없다는 것. 다른 것은 다 포기해도 포기할 수 없는 나. B를 갖는다는 것은 결국은 나에서 벗어나 객관적으로 자신을 바라본다는 것. 그것이 바로 '거울'이 상징하는 바가 아닐까. 마지막에 대장은 위생병이 사라진 것을 알게되고 이성을 잃고 화를 내다가 더듬이에게 따귀를 맞는다. 그리고 그 순간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자신이 생긴다. 조용히 다시 묵묵히 떠난다. 방황할 곳을 찾아. 이 책은 바퀴화 되가는 우리에게 던지는 따귀이며, 따귀를 맞고 얼얼한 볼을 문지르는 우리에게 비춰지는 거울인 것 같다. 따귀를 얻어맞고 '왜 때리는거야?'라고 화를 낸다면, 이미 바퀴화가 되 버린 것일 거다. 진짜 행복한 사람이 아니라, 행복하다는 착각을 하고 사는 사람.


* 덧붙일말// 화살의 촉의 뒷부분은 '뒤끝' 'Cockroachification' '시(쉬)가 들어있는 방광' 이런 언어유희 만으로도 충분히 웃김. 나처럼 한번 휘갈김 당해보도록 권장. 아, 난 맞아도 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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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임 낫 데어 (2008)

I'm Not There 
8.2
감독
토드 헤인즈
출연
벤 위쇼, 마커스 칼 프랭클린, 크리스찬 베일, 히스 레저, 케이트 블란쳇
정보
드라마 | 미국 | 135 분 | 2008-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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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없다. 산재된 자아. 여러사람에 걸쳐진 모호한 의식들 만이 있을 뿐. 그럼에도 우리는 '나' 그리고 '너'에 옷을 입히지 않고는 견디지 못한다. 그 허상은 점차 탄탄해지고 구체적으로 변해간다. 그리고 사람들은 한 번 길들여진 그 허상의 실체를 쉽게 벗어내지 못한다. 그것이 진짜 실체라고 착각하는 마음도, 쉽게 부서지지 않는다. 우리는 결국 이미지에게 마음을 잡아먹히고, 이미지에 조종당하고 만다.

밥 딜런. 사람들은 그에게 구미에 맞는 옷을 입히고, 그에게 자아를 부여하려 했다. 아니, 그것은 그가 스스로 만들어낸 자아였는지도 모른다. 모든 것에는 안정되면 머무르려고 하는 법칙이 있다. 주변 몇십명의 사람들에게 알려진 이미지도 털어내기 힘든 인간의 삶. 수천만 명에게 굳어진 이미지를 깨는 것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러나 그는 어느 곳에도 머무르지 않았다. 그는 대중이 만들어낸 허상에 저항하고 새로운 자신을 만들었다. 그리고 자신이 만들어낸 자신에서도 유유히 빠져나왔다. 그는 자유로웠다.

Arthur, Woody, Billy, Jude, Jack, Jhon, Robbie... 감독은 밥 딜런에게 각기 다른 7개의 옷을 입힌다. 그러나 그는 거기 없다. 이것은 밥 딜런의 이야기이지만, 허상 자아를 버리지 못하는 인간 모두에게 하는 외침이며, 깨달음에 대한 이야기이다.  구르는 돌. 길 위에서 멈추지 않는 돌. 거친 길바닥에 몸이 깎이는 고통. 감히 그렇게 살 수 있겠느냐고, 그가 묻는 것 같다. 그래서 결코 마음이 가볍지가 않다...





* 젊은 시절 밥 딜런의 모습을 보니 케이트 블랑쉐가 연기한 그의 모습과 너무도 닮아 깜짝 놀랐다.

  

* Like A Rollingstone - Bob Dylan

Once upon a time you dressed so fine
You threw the bums a dime in your prime, didn't you?
People'd call, say, "Beware doll, you're bound to fall"
You thought they were all kiddin' you
You used to laugh about
Everybody that was hangin' out
Now you don't talk so loud
Now you don't seem so proud
About having to be scrounging for your next meal.

예전에는 멋진 옷을 입고
으스대며 부랑자에게 잔돈푼을 집어 주었지
사람들은 말했어, "추락하는 걸 조심해, 아가씨"
그들이 농담하는 걸로 생각한 너는
떠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비웃곤 했지
그런데 지금은 말도 크게 못하고
당당해 보이지도 않는군
다음 끼니를 찾아 헤매야 하다니

How does it feel
How does it feel
To be without a home
Like a complete unkown
Like a rolling stone?

기분이 어때
기분이 어때
집 없이 사는 것이
알아주는 사람 없이
구르는 돌처럼 사는 것이?

You've gone to the finest school all right, Miss Lonely
But you know you only used to get juiced in it
And nobody has ever taught you how to live on the street
And now you find out you're gonna have to get used to it
You said yo'd never compromise
With the mystery tramp, but now you realize
He's not selling any alibis
As you stare into the vacuum of his eyes
And ask him do you want make a deal?

미스 론리, 당신은 명문 학교를 다녔지
하지만 학교에선 단물만 짜줬을 뿐이라는 걸 알고 있어
아무도 길거리에서 사는 방법을 가르쳐 주진 않았어.
그런데 지금은 노숙하는 삶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걸 알고 있지
당신은 수수께끼 같은 부랑자에게 결코 타협이란 없다고 말했어.
하지만 그가 아무 핑계도 대지 않은 것을 깨닫게 되었지
그리고 그의 눈에 텅 빈 공허를 보고
협상을 하겠느냐고 물었지

You never turned around to see the frowns on the jugglers and the clowns
When they all come down and did tricks for you
You never understand that it ain't no good
You shoudn't let other people get your kicks for you
You used to ride on the chrome horse with you diplomat
Who carred on his shoulders a Siamese cat
Ain't i hard to discover that
He wan't really where it was at
After he took everything from you he could steal

넌 마술사와 광대들의 찡그린 모습을 보려고 돌아서지 않았어.
그들이 너를 위해 묘기를 보여주었을 때도
그게 잘한 일이 아니라는 걸 넌 절대 이해 못하지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지 말아야 해
넌 외교관과 함께 황색 말을 타고 다녔어
그는 어께에 샴 고양이를 올려놓고 다녔지
그가 사실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은 일이었어
너로부터 훔칠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져간 후에

Princess on the steeple and all the pretty people
They're drinkin', thinkin' that they got it made
Exchanging all kinds of precious gifts and things
But you'd better lift your diamond ring, you'd better pawn it babe
You used to be so amused
At Napoleon in rags and the language that he used
Go to him now, he calls you, you can't refuse
When you got nothing, you got nothing to lose
You're invisible now, you got no secrets to conceal.

뾰족탑 위의 공주와 잘난 사람들은 모두
술을 마셔대며 성공했다고 생각하지
온갖 귀한 선물과 물건들을 교환하며
하지만 아가씨, 다이아몬드 반지를 집어서 저당 잡히는 게 좋을걸
누더기를 입은 나폴레옹가 그가 쓴느 말들을 재미있어 했잖아
이제 그에게 가, 너를 부르는 그를 거절할 수 없어
아무것도 없으면 잃을 것도 없어
이제 눈에 띄지도 않고 감출 비밀도 없는 사람이지.

How does it feel
How does it feel
To be without a home
Like a complete unknown
Like a rolling stone?

기분이 어때
기분이 어때
집 없이 사는 것이
알아주는 사람 없이
구르는 돌처럼 사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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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세폴리스 (2008)

Persepolis 
8.6
감독
마르잔 사트라피, 뱅상 파로노
출연
쉬아라 마스트로얀니, 까뜨린느 드뇌브, 다니엘 다리유, 시몬 압카리안, 가브리엘 로페스
정보
애니메이션, 드라마 | 프랑스, 미국 | 95 분 | 2008-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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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세폴리스이란의 페르세폴리스 유적

왜 제목이 페르세폴리스일까?

영화를 보기 전부터 계속 의문이 들었다. 영화를 보고 나면, 해답이 있을까 했는데 궁금증은 증폭될 뿐. 이리 저리 인터넷 서핑을 해 보았지만 명쾌한 해법을 찾을 수는 없었으니, 혼자 추측해 보는 수밖에. ‘페르세폴리스’는 이란 남서부 팔스 지방에 있는 유적지로 페르시아의 찬란한 문명이었던 아케메네스왕조의 수도였다. 아케메네스는 그 당시 문명세계를 통일한 거대한 제국이었다. 이란의 고대 왕조가 건설했던 찬란했던 문명을 제목으로 내세우며 그녀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란에 대한 세상의 편협한 시각을 바로잡기 위한, 그녀의 조국에 대한 자부심에서 비롯된 것>이었을까. 흥미로운 정보를 하나 찾을 수 있었는데, 아케메네스 왕조를 창시한 키루스 대왕은 인권의 신성함과 개인의 자유를 공개적으로 천명한 세계 최초의 군주로 평가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인류 최초의 인권선언문이라 볼 수 있는 ‘키루스 원통’에는 모든 인종, 언어 종교의 평등함과 추방당한 만민이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갈 권리에 대해 쓰여 있다고 한다! 이란이 지나온 아픈 역사, 그리고 종교를 제멋대로 해석하여 탄압하는 독재자들을 고발하며, 다양성이 인정되는 자유로운 국가였던 기원전의 페르시아 시절을 꿈꾸는 마르잔의 소망이 담긴 제목이 아닐까.


무거움과 가벼움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솜씨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줘야 할 종교가 탐욕스런 정치가들에 손에 들어가자 사람들을 탄압하는 도구가 되어버렸다. 사람들 속의 ‘공포’를 먹고 사는 괴물 말이다. 희망이라곤 찾을 수 없을 듯 한 답답하고 비참한 상황. 그렇지만 영화를 떠올리며 입가에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것은 억압적인 사회가 개인에게 끼치는 폭력을 신랄하게 그렇지만 유쾌하게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철저하게 마르잔의 시각으로 그려진 인물들의 표현이 너무 재미있었다. 이것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의 최대 장점이 아닌가 싶다. ‘Punk is not dead’라고 쓰인 자켓을 입고 집을 나선 마르잔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정색 히잡을 눌러쓴 악마 같은 어른들에게 잡힌다. 이것은 빈의 기숙사에서 만난 보수적인 수녀원장의 수녀복과 거의 비슷하다! 젠틀하고 잘생겼던 남자친구는 그녀의 회상 속에서 추하고 쫀쫀한 인간이 되어버린다. 거리에서 몰래 락 음반을 파는 사람들이 눈치를 보며 사람들에게 마약 밀매하듯이 “존 레논” “핑크 플로이드” 속삭이는 장면은 폭소를 터뜨릴 정도였다. 마르크스를 신봉하는 한 소녀에게 절대로 인정할 수 없는, 자유를 빼앗긴 잔인한 세상. 상상력으로 과장된, 그래서 더 리얼하기도 한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보다보면 무겁고 착잡한 마음을 한 겹 걷어내고 영화 자체를 즐길 수 있게 된다.  

페르세폴리스 포스터

차도르와 펑크 사이

지긋지긋한 차도르만 벗으면 해방될 줄 알았는데. 어떤 상황에서도 당당하고 용감할 것 같던 꼬마 마르잔은 오스트리아에서 사춘기를 지나며,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펑크와 아디다스 운동화를 좋아하던 그녀에게 자유로운 유럽에서의 생활이 잘 어울릴 것이라는 예상은 산산히 부서졌다. 그녀가 입었다 벗었다 반복하는 차도르는 그녀가 벗어날 수 없는 그녀의 뿌리이다. 가슴이 푹 파인 짧은 원피스를 입는다고 해도 그녀가 이란인이라는 정체성을 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겉껍데기를 아무리 바꿔봤자 다른 문화에 자신이 동화될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사랑이 잠시 빈자리를 채워주었지만, 사랑이 떠나가자 더욱 커다란 외로움이 그녀를 파고들었다. 거리에서 잠을 자고. 쓰레기를 주워 먹고. 뒷골목의 사내들에게 농락당하는 불쌍한 영혼. 다른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과 다른 곳에 정착해서 사는 것은 다르다. 낯선 느낌은 여행을 풍요롭게 한다. 그것은 얼마 후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번이라도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다른 나라에 정착해서 살아보려고 노력했던 사람은 그녀의 방황에 깊게 공감할 것이다. 자신이 매력을 느꼈던 그 이질감이 또 얼마나 자신을 외롭게 하는지. 이란에서도, 빈에서도 행복하지 못했던 마르잔이 마지막으로 향한 프랑스에서 그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멋있는 여자들
마르잔, 그녀의 어머니와 할머니로 대변되는 화끈하고 용감한 여성 주의적 캐릭터들의 용기 있는 행동은 사람들을 긴장시키기도 하고 카타르시스를 주기도 한다. 인권에 반하는 사회의 법칙에 순응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사회는 퇴화할 것이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희생하고서라도 용기를 내어 자신이 믿는 것을 위해 싸울 것인가, 내 자신의 행복한 삶을 찾아 떠날 것인가 하는 고민 앞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인간이 어디 있을까. 무슬림 국가에서 여성의 인권문제는 아직도 심각한 편이다. 그 억압된 사회에 직접 속하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용기내기가 좀 더 쉬울 것이다. 그것이 다른 나라의 인권문제에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할 중요한 이유이다.    

마르잔에게 ‘가족’이 있어 다행이다
참으려 애썼지만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마르잔의 부모님이 그녀를 빈으로 보내기로 결심했을 때. 그녀를 걱정하며 울부짖던 어머니. 끝까지 강한 모습을 보여주려던 어머니는 마르잔이 빈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타며 뒤돌아보았을 때 쓰러져있었다. 차가운 감방에서 스러져 가는 삼촌이 마르잔에게 손으로 만든 백조를 건네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 하나하나 잊을 수가 없다. 마르잔에게 지혜를 주고, 그녀를 치유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주는 것은 가족들의 사랑이었다. 할머니의 지혜와 여유, 삼촌의 용기와 추진력, 어머니의 당당함과 아버지의 침착함... 마르잔이 그들을 닮은 훌륭한 어른이 되었기를, 그리고 나도 그들을 닮아갈 수 있기를.      

페르세폴리스 1
카테고리 만화
지은이 마르잔 사트라피 (새만화책,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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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화책으로 읽으면 더 자세하고 생생하게 마르잔의 일기를 펼쳐보는 것 같은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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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2005)

The Hitchhiker's Guide to the Galaxy 
8.1
감독
가스 제닝스
출연
마틴 프리먼, 조이 데이셔넬, 샘 록웰, 모스 데프, 스티븐 프라이
정보
코미디, SF, 어드벤처 | 영국, 미국 | 110 분 | 2005-08-26

딱 10분 후. 지구는 흔적도 없이 사라질꺼야. 그렇다면 뭘 해야 하지? 

a. 그 딴 개소리는 집어쳐 라고 생각하며 지금 내가 컴퓨터에 앉은 이 자세 그대로 시시껄렁한 인터넷 기사에낚이고 있을려나.
b. 나는 그 누구의 섭리에도 굴복하지 않는 자주적인 존재다! 를 외치며 멸망 1초전 자살을 감행해볼까.
c. 아니면, 있는 힘을 다해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손을 맞잡고 상대방의 눈을 바라보며 드디어 ‘영원한 사랑’이 이루어졌음을 감사해야하나.

이 영화에서의 해법은 간단하다.

다시는 맛보지 못할 시원한 맥주 두 컵을 벌컥 벌컥 연거푸 마신다. 그리고 밖으로 나와 엄지손가락을 번쩍 하늘에 치켜든다. 지구를 지나가는 외계 우주선에 히치하이킹을 해야 하니까.

오랜만에 내 취향에 꼭맞는 영화를 만났다! 환경오염, 꽉 막힌 관료주의, 현대인의 우울증... 거기다가 이 세상이 생겨난 궁극적인 이유는 뭘까? 등등 무거운 주제들에 헬륨가스를 왕창 집어넣은 뒤 발로 뻥뻥 차면서 노는 수준.

나도 인간이 만들어낸 고질적인 질병들을 고치기엔 그것이 너무 어마어마하고 거대해서 차라리 그것에 대한 농담을 하고 마는 부류인 것 같다. 그냥 목젖이 부르르 떨리다가 나를 제발 좀 그만 놔둬 하면서 도망가 버릴 때까지 웃어제껴 버리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인 것만 같아서.

이 영화에서는 기발한 물건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그중에 전세계 40억 인구가 하나씩 소지하면 좋을 것 같은 아이템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총이다. 그냥 총이 아니고 ‘역지사지 총’ 이라고 해야 하나? 총을 상대방에게 쏘면, 총을 맞은 사람은 잠시 동안 총을 쏜 사람의 마음이 돼서 이야기하게 된다. 어떨 땐 자신도 미처 몰랐던 자기 마음까지 상대방이 알아주는 효과가! 

아무튼. 내 눈 앞에서 그 어떤 무섭고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나더라도, 단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

Don't Panic. (쫄지마)

+ 정말 재미있고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많이 나오는데 자꾸 얼굴 인식 뇌가 자꾸 자극 되서 말이지...
  자동적 닮은꼴 생각해내기 능력이라고 해야 되나?



-> 존 말코비치의 입을 보고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시트콤 위기의 주부들에 나오는 배우다. 웃을 때시원시원한 입모양이 매우 비슷. 내가 왠지 모르게 호감을 느끼는 여자인데 이름은 Felicity Huffman. 내가 남자였으면 아마 이런 여자를 좋아했을 것 같다.



->우리의 여운계 여사도 비슷!



-> 누구라도 노홍철을 떠올릴 듯한 캐릭터. 은하계 의장직을 맡으면서 자기 뇌를 두개로 갈라 리더에 어울리지 않는 성격을 목 밑에 숨기고 사는데 가끔씩 튀어나와 귀여운 행패(?)를 부린다.  



->자신들이 만들어낸 엄청난 절차와 바보같은 규율에 기계적으로 따르다가 주변인들을 숨터져 죽게만들 괴물들. 상상력의 가장 큰 적은 아무래도 경직된 관료주의가 아닐까? 전투복(?) 입었을때 입술은 은근히 섹시했지만;  



->세상만사에 냉소적인대다가 우울증에 걸린 로봇. 가장 확실하고 귀여웠던 캐릭터. 더욱 웃긴것은 이 목소리를 연기한 것이 해리포터의 스네이프 교수역을 맡았던 알란 릭맨!


+ 상상력의 초특급 대왕이라고 칭해도 될만한 이 기발한 이야기를 만들어낸 작가는 더글라스 애덤스 라는 사람인데 (원작소설 작가) 그의 프로필을 읽어보다가 재밌는 부분을 발견했다.

은하수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세트...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더글러스 애덤스 (책세상,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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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히치하이커 시리즈의 무궁무진한 입담과 달리, 애덤스는 주위의 독촉과 압력을 받고서야 이야기를 풀어내곤 했는데, 시리즈의 4권인《안녕히, 그리고 물고기는 고마웠어요》는 편집자와 함께 호텔에 갇혀서 완성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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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산본동에 소재한 E-마트..  p.m 10시 40분경 영업 마치기전 막바지 떨이 세일이 시작되면, 이곳은 더이상 가족들이 오손도손 쑈핑을 하는 공간이 아니다. 매장 곳곳에서는 마치 이라크 전선을 방불케하는 치열한 육탄전이 펼쳐지며, 나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훌륭한 전략을 구사하시는 우리 모친이시기도한 권대위님의 충실한 충견으로서 참전하였다.

가장 먼저 공략의 대상이 된 곳은, 야채코너. 한봉지에 가득 담아 3천원이라는 야채코너 아줌마의 호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대한민국 아주머니들의 치열한 비닐 봉지에 야채 쑤셔넣기 접전이 펼쳐진다. 개중 비싸다는 버섯이 위에서 떨어지기가 무섭게 수많은 손들이 버섯봉투를 향해 달려들지만, 이때 많은 부분을 움켜잡고 한번에 강한 힘으로 당겨서 자기 바구니에 재빨리 집어넣은 자가 승리하게 된다.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야채코너는 배추닢 몇장만 남을 정도로 초토화 되었고, 미처 빨리 잡지 못한 사람들은 아쉬움에 쓴 패배를 삼켜야했다.

아차, 야채에 집중하고 있던 동안 옆의 밀감코너는 절반이 이상이 동이난 터였다.
"밀감 무조건 한봉지에 만원~ 그러나 묶이지 않으면 스티커를 안붙여드립니다~"
이 밀감코너는 특히 비닐봉투 하나에 얼마나 많은 밀감을 넣느냐가 관건이며, 이는 수많은 노하우와 좋은 밀감을 골라내는 집중력을 요한다. 그러나 그전에 가장 중요한 것은 자리를 가득 매운 그 아줌마들 사이를 파고 들어가 안정적인 자리를 확보하고 밀감을 골라넣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으신 우리 권대위님, 겨우 한자리를 차지하고 밀감집어넣기에 집중하셨다. 본인은 밀감코너 아저씨의 방송에 집중하며, 묵묵히 밀감을 집어넣으시는 대위님의 모습을 존경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밀~감. 밀어서 된 감이 아니죠~ 밀감이지요~ 귤이라고도 하지요~"
"밀감에 들어있는 비타민C드시고 감기예방 하십시오~ 그런데 밀감먹다 사래걸리면 약도 없습니다~"
밀감은 금새 바닥이 보이기 시작했고, 뒤늦게 들어온 적군들은 포기하고 나가야 했다. 너무 욕심을 부려 봉지가 묶이지 않자 스티커를 거부당한 사람은 힘들게 고른 밀감을 빼내야했다.

"아~ 저분 아주 머리좋으신 분이 계십니다. 비닐봉지를 먼저 묶고, 귤을 쑤셔넣는 전법~ 다 넣고 봉지 묶으려면 안묶이지요." 아저씨가 경탄하며 칭찬하시는 그분은, 바로 우리 권대위님이였다ㅠ.ㅠ 일말의 표정 변화 없이 열심히 봉지 사이로 귤을 집어넣고 계신 우리 자랑스런 권대위님ㅡ

곳곳에서 언제 들릴 지 모르는 세일 호령을 캐취하는 밝은 귀와 재빠른 발걸음, 봉지에 어떻게하면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는가의 오랜 노하우와 전략, 졸병을 줄에 대기시키고 다른 코너를 공략하는 시간절략법... 존경스러운 우리 권대위님...

주로 짐들어줘야할떄 연락하는 이신우 일병이 먼곳에 있는 상태라 밀감 봉지를 낑낑대며 들고와야 했지만, 권대위님의 입가에는 만족의 미소가 잔잔히 흘렀다...

우리 권대위님은 저녁 10시 이전엔 절대 이마트에 안가신다...


(2003년 10월 29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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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사블랑카

Casablanca 
9
감독
마이클 커티즈
출연
험프리 보가트, 잉그리드 버그만, 폴 헌레이드, 클로드 레인즈, 콘라드 바이트
정보
로맨스/멜로, 드라마 | 미국 | 102 분 | -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

영화가 끝나고서야 알았다. 한국사람들에게 익히 알려진 이 대사. 카사블랑카를 안본 사람일지라도 다 안다는 이 명대사는 "Here's looking at you, kid"라는 원어를 느끼스름 멋지게 바꾸신 번역가분의 솜씨라는 걸. 영화 끝날 때까지도 눈동자에 건배 언제하나 하고 기다렸다. 그래서 잉그리드 버그만을 태운 비행기가 떠나고서도 나는 그녀가 떠나지 않았을거라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나서야 아, 초반에 그게 그거였구나...했다. (그렇다 난 오기로라도 영어자막을 키고 봤었던 것이다!)

로맨스의 고전이라는 카사블랑카. 사랑에 빠져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니 그 비슷한 감정이라도 느껴본 사람이라면 상대방의 감정과 나의 감정의 발런스가 맞지 않았을 때. 특히 내 사랑이 더 많은 듯 하여 자기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순간을 맛보았을 것이다. 변변한 연애경험 없는 나도 물론 그 감정을 너무나도 잘 알고있다. (왜냐면 난 생각보다 많이 소심하거든.)

그런 비슷한 감정을 지칭할 만한 괜찮은 단어를 한국어에서는 찾기 힘들었는데, 밀란쿤데라의 소설에서 체코의 한 단어를 발견했을 때는 무릎을 탁 쳤다. 그것은 바로 '리토스트'였다. 리토스트는 남녀간 사랑을 넘어서서 좀더 범위가 확장되며 주로 소심하고 잘 삐지는 사람들에게 잘 나타난다. 반댓말이라면 뭐 쿨- 한거 정도?  

밀란 쿤데라에 따르면 - 리토스트란 갑자기 노출된 우리 자신의 비참한 모습에서 태어난 고통스러운 상태이다. (여기에 대해 더 잘 알고싶으신 분은 밀란쿤데라의 '웃음과 망각의 책' 을 읽어보라. 귀찮으시다면 검색창에 '리토스트'만 쳐보라.)

웃음과 망각의 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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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는 사람들의 이런 감정을 얼마나 잘 이용하느냐가 관건인 것 같다. 자신을 버리고 떠난 그녀가 다시 눈앞에 왔을 때. 마음속으로는 너무나도 반갑지만 지난 애증 때문에 퉁명스럽게 그녀를 대하는 험프리 보가트. 그녀를 붙잡고 싶지만, 그녀가 떠나지 않길 가슴속 간절히 원하지만, 안 그런척 하며(안그런척하는것까지 다 보이지만 말이다) 애써 등을 돌리는 모습에서 내가 가슴이 미어질 듯한 쓰라림을 느끼는 것도  그놈의 리토스트란 감정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그 감정의 해소법은 역시 '복수'만큼 좋은게 없다. 상대방도 똑같이 그 기분을 느끼게 해 주는 것. 그래서 초라해진 내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 것. 가능하면 상대방이 복수라는걸 몰라야 된다. 내가 소심해보이면 그것마저도 또다른 리토스트를 형성하게 될테니말이다. 나는 최대한 쿨하게 보이면서 상대방을 상처주고, 상대방이 찔찔 울면서 메달린다면 못이기는 척 받아주던지 아니면 확 차버리던지.

->>그러나 못이기는 척 받아주는 것이 처음 계획이다.

 

아, 얼마나 많은 날을 머릿속에서 상상했는가. 그사람이 후회하기를. 얼마나 아무렇지 않은척 하려고 했던가. 그 아무렇지 않은 척이 나에게는 너무 쉬운 일이었기에 얼마나 어려웠던가. 얼마나 많은 날을 난 머릿속에서만 그 복수를 자행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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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프리 보가트는 결국 애국심을 선택하고 여자를 버렸다. 그가 그런 결단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리토스트가 회복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여자가 다시 돌아와서 당신과 평생 함께하겠다고 약속을 했을 때, 그는 그제서야 그녀를 떠나보낼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사랑한다면 보내줄줄도 알아야 한다고는 하지만, 그게 그렇게 멋지게 되는가? 그녀가 그 아니면 안되겠다고 메달리는데 보내줄 줄 알아야 자신이 멋있어 지는 게 아니던가. 거기다 애국심까지. 어짜피 떠날여자 보내주는 건 그에게 있어서는 구차하고 초라한 일인 것이지만 말이다.

험프리 보가트가 어떤 결정을 내리는 건지 도대체 머릿속에 무슨 생각이 들어있는건지 도통 알 수 없는 채로 영화의 마지막 1/5 은 최고의 긴장과 아련함을 남겼다. 특히 삼각관계의 세 남녀가 뿌연 안개속의 공항에서 대치하고 있는 장면. 눈에 가득 눈물을 머금은 잉그리드 버그만과 결연한 남편. 그리고 눈빛에 미련을 남긴 채 여자를 떠나보내는 험프리 보가트.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다.

그렇다. 삼각관계에선 어찌됬건 누군가는 상처를 받는다. 보내줄줄 알아야한다. 그래서 나의 리토스트는 오늘도 회복되지 못한 채로 세월이 흘러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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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사블랑카 (Casablanca, 1942)
마이클 커티즈 감독
험프리 보가트, 잉그리드 버그만 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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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지에 (0000)

Puujee 
9.4
감독
카즈야 야마다
출연
-
정보
다큐멘터리 | 일본, 몽골 | 110 분 | 0000-00-00

 


세키노는 몽골의 벌판에서 능수능란하게 말을 모는 7살 꼬마를 만나고 사진을 찍는다. 이 카리스마 넘치는 여자아이는 마음대로 사진 찍은 세키로에게 화가난 듯하지만, 강렬한 느낌을 받은 세키로는 그 아이의 집까지 찾아가게 된다. 이렇게 세키로와 푸지에 가족의 인연이 시작된다.

'푸지에'라는 몽골의 7살박이 소녀. 억척스러워 보이지만 담대해 보이는 이 소녀의 풍채가 너무 강렬하다. '걱정이 없는 것'은 어린아이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그러나 푸지에는 몇십마리 양과 말을 책임져야 하고 가족의 생계를 걱정해야 하기에 일찍이 어른의 표정을 배웠다. 그러나 그녀는 불쌍해 보이거나 안쓰러워 보이지 않는다. 당당하고 멋있다. 닮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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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키노가 찍어준 가족사진 (할머니, 사촌동생 바사, 푸지에, 엄마)


드넓은, 아니면 황량한, 몽골의 들판 처럼 여백이 많은 다큐멘터리였다. 그 여백을  여러가지 생각들로 채울 수 있도록, 충분히 천천히 진행되는 담담한 시선이 고맙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거친 땅에서 말과 양을 키우며 살아온 몽골의 유목민들. 감독은 시장경제가 몽골에 파고들면서 전통적인 유목민들의 생활이 파괴되는 모습을 담담히 카메라에 담아낸다. 그래서 더 비참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그것은 너무나 거대하고 형체없는 흐름이기에 저항할 힘이 없다. 이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왜 하늘은 그런 비극을 내려야 하는 것일까. 2시간여의 러닝타임이 끝나고 나니 가슴이 텅 비어버리는 것 같았다. 이것은 영화가 아닌 현실이기에, 믿고 싶지 않지만 받아들여야만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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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중 가장 행복한 순간은 아이들의 미소와 마주칠 때다. 내 눈길을 끄는 아이들은 공통점이 있다. 그 아이들은 자립심이 강하며 어른들의 테두리를 거부한다."

- 세키노 요시하루
 

세키노 요시하루는 인류의 탄생지를 따라 남미 최남단부터 아프리까까지 여행하는 모험가이다. 몽골을 자전거로 횡단하던 중 푸지에 가족과 깊은 정을 나누고 일 년에 한 번씩 가족을 찾아가지만, 몽골 유목민들의 힘든 삶에 철저하게 목격자로서 남을 뿐이다. 푸지에 가족에게 근본적인 해결책을 주지 못하고 바라볼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그의 마음과 답답한 마음이 담긴 얼굴을 보면, 거울을 보고 있지 않아도 다큐를 보고 있는 내 얼굴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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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자란 나같은 사람은 거친 몽골의 들판을 동경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지만, 정작 몽골 사람들은 하나 둘 도시로 떠나가고 있다. 누구의 책임도 아니며 모두의 책임일 수 있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가슴 먹먹해지는 마지막 결말. 푸지에 가족에게 일어난 비극을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는 내 자신이 답답하다. 푸지에는 죽었지만 일본어 통역사가 되고싶어한 푸지에의 꿈은 아직 남아있다고 한다. 그것은 몽골에서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또 다른 어린아이의 꿈일까.
     

무표정한 푸지에에게 가끔씩 번지는 귀여운 미소, 그렇게 그녀를 품는다.









푸지에 (Puujee, 2007)
다큐멘터리
카즈야 아마다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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