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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9.24 <카사블랑카> 슬픈 사랑의 리토스트

 


카사블랑카

Casablanca 
9
감독
마이클 커티즈
출연
험프리 보가트, 잉그리드 버그만, 폴 헌레이드, 클로드 레인즈, 콘라드 바이트
정보
로맨스/멜로, 드라마 | 미국 | 102 분 | -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

영화가 끝나고서야 알았다. 한국사람들에게 익히 알려진 이 대사. 카사블랑카를 안본 사람일지라도 다 안다는 이 명대사는 "Here's looking at you, kid"라는 원어를 느끼스름 멋지게 바꾸신 번역가분의 솜씨라는 걸. 영화 끝날 때까지도 눈동자에 건배 언제하나 하고 기다렸다. 그래서 잉그리드 버그만을 태운 비행기가 떠나고서도 나는 그녀가 떠나지 않았을거라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나서야 아, 초반에 그게 그거였구나...했다. (그렇다 난 오기로라도 영어자막을 키고 봤었던 것이다!)

로맨스의 고전이라는 카사블랑카. 사랑에 빠져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니 그 비슷한 감정이라도 느껴본 사람이라면 상대방의 감정과 나의 감정의 발런스가 맞지 않았을 때. 특히 내 사랑이 더 많은 듯 하여 자기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순간을 맛보았을 것이다. 변변한 연애경험 없는 나도 물론 그 감정을 너무나도 잘 알고있다. (왜냐면 난 생각보다 많이 소심하거든.)

그런 비슷한 감정을 지칭할 만한 괜찮은 단어를 한국어에서는 찾기 힘들었는데, 밀란쿤데라의 소설에서 체코의 한 단어를 발견했을 때는 무릎을 탁 쳤다. 그것은 바로 '리토스트'였다. 리토스트는 남녀간 사랑을 넘어서서 좀더 범위가 확장되며 주로 소심하고 잘 삐지는 사람들에게 잘 나타난다. 반댓말이라면 뭐 쿨- 한거 정도?  

밀란 쿤데라에 따르면 - 리토스트란 갑자기 노출된 우리 자신의 비참한 모습에서 태어난 고통스러운 상태이다. (여기에 대해 더 잘 알고싶으신 분은 밀란쿤데라의 '웃음과 망각의 책' 을 읽어보라. 귀찮으시다면 검색창에 '리토스트'만 쳐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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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는 사람들의 이런 감정을 얼마나 잘 이용하느냐가 관건인 것 같다. 자신을 버리고 떠난 그녀가 다시 눈앞에 왔을 때. 마음속으로는 너무나도 반갑지만 지난 애증 때문에 퉁명스럽게 그녀를 대하는 험프리 보가트. 그녀를 붙잡고 싶지만, 그녀가 떠나지 않길 가슴속 간절히 원하지만, 안 그런척 하며(안그런척하는것까지 다 보이지만 말이다) 애써 등을 돌리는 모습에서 내가 가슴이 미어질 듯한 쓰라림을 느끼는 것도  그놈의 리토스트란 감정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그 감정의 해소법은 역시 '복수'만큼 좋은게 없다. 상대방도 똑같이 그 기분을 느끼게 해 주는 것. 그래서 초라해진 내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 것. 가능하면 상대방이 복수라는걸 몰라야 된다. 내가 소심해보이면 그것마저도 또다른 리토스트를 형성하게 될테니말이다. 나는 최대한 쿨하게 보이면서 상대방을 상처주고, 상대방이 찔찔 울면서 메달린다면 못이기는 척 받아주던지 아니면 확 차버리던지.

->>그러나 못이기는 척 받아주는 것이 처음 계획이다.

 

아, 얼마나 많은 날을 머릿속에서 상상했는가. 그사람이 후회하기를. 얼마나 아무렇지 않은척 하려고 했던가. 그 아무렇지 않은 척이 나에게는 너무 쉬운 일이었기에 얼마나 어려웠던가. 얼마나 많은 날을 난 머릿속에서만 그 복수를 자행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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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프리 보가트는 결국 애국심을 선택하고 여자를 버렸다. 그가 그런 결단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리토스트가 회복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여자가 다시 돌아와서 당신과 평생 함께하겠다고 약속을 했을 때, 그는 그제서야 그녀를 떠나보낼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사랑한다면 보내줄줄도 알아야 한다고는 하지만, 그게 그렇게 멋지게 되는가? 그녀가 그 아니면 안되겠다고 메달리는데 보내줄 줄 알아야 자신이 멋있어 지는 게 아니던가. 거기다 애국심까지. 어짜피 떠날여자 보내주는 건 그에게 있어서는 구차하고 초라한 일인 것이지만 말이다.

험프리 보가트가 어떤 결정을 내리는 건지 도대체 머릿속에 무슨 생각이 들어있는건지 도통 알 수 없는 채로 영화의 마지막 1/5 은 최고의 긴장과 아련함을 남겼다. 특히 삼각관계의 세 남녀가 뿌연 안개속의 공항에서 대치하고 있는 장면. 눈에 가득 눈물을 머금은 잉그리드 버그만과 결연한 남편. 그리고 눈빛에 미련을 남긴 채 여자를 떠나보내는 험프리 보가트.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다.

그렇다. 삼각관계에선 어찌됬건 누군가는 상처를 받는다. 보내줄줄 알아야한다. 그래서 나의 리토스트는 오늘도 회복되지 못한 채로 세월이 흘러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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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사블랑카 (Casablanca, 1942)
마이클 커티즈 감독
험프리 보가트, 잉그리드 버그만 주연

Posted by birdk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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