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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1.13 <페르세폴리스>를 꿈꾸며

 


페르세폴리스 (2008)

Persepolis 
8.6
감독
마르잔 사트라피, 뱅상 파로노
출연
쉬아라 마스트로얀니, 까뜨린느 드뇌브, 다니엘 다리유, 시몬 압카리안, 가브리엘 로페스
정보
애니메이션, 드라마 | 프랑스, 미국 | 95 분 | 2008-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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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세폴리스이란의 페르세폴리스 유적

왜 제목이 페르세폴리스일까?

영화를 보기 전부터 계속 의문이 들었다. 영화를 보고 나면, 해답이 있을까 했는데 궁금증은 증폭될 뿐. 이리 저리 인터넷 서핑을 해 보았지만 명쾌한 해법을 찾을 수는 없었으니, 혼자 추측해 보는 수밖에. ‘페르세폴리스’는 이란 남서부 팔스 지방에 있는 유적지로 페르시아의 찬란한 문명이었던 아케메네스왕조의 수도였다. 아케메네스는 그 당시 문명세계를 통일한 거대한 제국이었다. 이란의 고대 왕조가 건설했던 찬란했던 문명을 제목으로 내세우며 그녀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란에 대한 세상의 편협한 시각을 바로잡기 위한, 그녀의 조국에 대한 자부심에서 비롯된 것>이었을까. 흥미로운 정보를 하나 찾을 수 있었는데, 아케메네스 왕조를 창시한 키루스 대왕은 인권의 신성함과 개인의 자유를 공개적으로 천명한 세계 최초의 군주로 평가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인류 최초의 인권선언문이라 볼 수 있는 ‘키루스 원통’에는 모든 인종, 언어 종교의 평등함과 추방당한 만민이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갈 권리에 대해 쓰여 있다고 한다! 이란이 지나온 아픈 역사, 그리고 종교를 제멋대로 해석하여 탄압하는 독재자들을 고발하며, 다양성이 인정되는 자유로운 국가였던 기원전의 페르시아 시절을 꿈꾸는 마르잔의 소망이 담긴 제목이 아닐까.


무거움과 가벼움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솜씨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줘야 할 종교가 탐욕스런 정치가들에 손에 들어가자 사람들을 탄압하는 도구가 되어버렸다. 사람들 속의 ‘공포’를 먹고 사는 괴물 말이다. 희망이라곤 찾을 수 없을 듯 한 답답하고 비참한 상황. 그렇지만 영화를 떠올리며 입가에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것은 억압적인 사회가 개인에게 끼치는 폭력을 신랄하게 그렇지만 유쾌하게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철저하게 마르잔의 시각으로 그려진 인물들의 표현이 너무 재미있었다. 이것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의 최대 장점이 아닌가 싶다. ‘Punk is not dead’라고 쓰인 자켓을 입고 집을 나선 마르잔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정색 히잡을 눌러쓴 악마 같은 어른들에게 잡힌다. 이것은 빈의 기숙사에서 만난 보수적인 수녀원장의 수녀복과 거의 비슷하다! 젠틀하고 잘생겼던 남자친구는 그녀의 회상 속에서 추하고 쫀쫀한 인간이 되어버린다. 거리에서 몰래 락 음반을 파는 사람들이 눈치를 보며 사람들에게 마약 밀매하듯이 “존 레논” “핑크 플로이드” 속삭이는 장면은 폭소를 터뜨릴 정도였다. 마르크스를 신봉하는 한 소녀에게 절대로 인정할 수 없는, 자유를 빼앗긴 잔인한 세상. 상상력으로 과장된, 그래서 더 리얼하기도 한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보다보면 무겁고 착잡한 마음을 한 겹 걷어내고 영화 자체를 즐길 수 있게 된다.  

페르세폴리스 포스터

차도르와 펑크 사이

지긋지긋한 차도르만 벗으면 해방될 줄 알았는데. 어떤 상황에서도 당당하고 용감할 것 같던 꼬마 마르잔은 오스트리아에서 사춘기를 지나며,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펑크와 아디다스 운동화를 좋아하던 그녀에게 자유로운 유럽에서의 생활이 잘 어울릴 것이라는 예상은 산산히 부서졌다. 그녀가 입었다 벗었다 반복하는 차도르는 그녀가 벗어날 수 없는 그녀의 뿌리이다. 가슴이 푹 파인 짧은 원피스를 입는다고 해도 그녀가 이란인이라는 정체성을 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겉껍데기를 아무리 바꿔봤자 다른 문화에 자신이 동화될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사랑이 잠시 빈자리를 채워주었지만, 사랑이 떠나가자 더욱 커다란 외로움이 그녀를 파고들었다. 거리에서 잠을 자고. 쓰레기를 주워 먹고. 뒷골목의 사내들에게 농락당하는 불쌍한 영혼. 다른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과 다른 곳에 정착해서 사는 것은 다르다. 낯선 느낌은 여행을 풍요롭게 한다. 그것은 얼마 후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번이라도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다른 나라에 정착해서 살아보려고 노력했던 사람은 그녀의 방황에 깊게 공감할 것이다. 자신이 매력을 느꼈던 그 이질감이 또 얼마나 자신을 외롭게 하는지. 이란에서도, 빈에서도 행복하지 못했던 마르잔이 마지막으로 향한 프랑스에서 그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멋있는 여자들
마르잔, 그녀의 어머니와 할머니로 대변되는 화끈하고 용감한 여성 주의적 캐릭터들의 용기 있는 행동은 사람들을 긴장시키기도 하고 카타르시스를 주기도 한다. 인권에 반하는 사회의 법칙에 순응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사회는 퇴화할 것이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희생하고서라도 용기를 내어 자신이 믿는 것을 위해 싸울 것인가, 내 자신의 행복한 삶을 찾아 떠날 것인가 하는 고민 앞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인간이 어디 있을까. 무슬림 국가에서 여성의 인권문제는 아직도 심각한 편이다. 그 억압된 사회에 직접 속하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용기내기가 좀 더 쉬울 것이다. 그것이 다른 나라의 인권문제에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할 중요한 이유이다.    

마르잔에게 ‘가족’이 있어 다행이다
참으려 애썼지만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마르잔의 부모님이 그녀를 빈으로 보내기로 결심했을 때. 그녀를 걱정하며 울부짖던 어머니. 끝까지 강한 모습을 보여주려던 어머니는 마르잔이 빈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타며 뒤돌아보았을 때 쓰러져있었다. 차가운 감방에서 스러져 가는 삼촌이 마르잔에게 손으로 만든 백조를 건네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 하나하나 잊을 수가 없다. 마르잔에게 지혜를 주고, 그녀를 치유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주는 것은 가족들의 사랑이었다. 할머니의 지혜와 여유, 삼촌의 용기와 추진력, 어머니의 당당함과 아버지의 침착함... 마르잔이 그들을 닮은 훌륭한 어른이 되었기를, 그리고 나도 그들을 닮아갈 수 있기를.      

페르세폴리스 1
카테고리 만화
지은이 마르잔 사트라피 (새만화책,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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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화책으로 읽으면 더 자세하고 생생하게 마르잔의 일기를 펼쳐보는 것 같은 기분!
Posted by birdk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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