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bin Hood’s Retort” by Naomi S. Baron

Summary


1150, 로빈 후드가 십자군에서 영국으로 돌아왔을 때 그의 사랑  마리안은 이미 수녀가 된 후였다. 마리안이 로빈 후드에게 왜 살아있다고 편지를 쓰지 않았냐고 물었을 때, 로빈은 글을 어떻게 쓰는지 배운적이 없다고 항변했다. 그때와 다르게 이제 글은 현대의 필수적인 커뮤니케이션이 되었지만, 쓰기(writing)와 말하기(speaking)의 관계는 정의하기가 간단하지 않다. 이 두가지 언어의 시스템을 유지해야할 이유가 있는 것일까?


우리가 글을 쓰는 이유는, 인간은 뛰어난 기억력을 갖고 있지만, 자주 특별한 의미가 없는 이상 잘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문자(Script)는 어표문자(logographic script), 음절문자(syllabic script), 알파벳 문자(alphabetic script)로 구분할 수 있다. 언어 체계는 독자적으로 발전했다기 보다는 다른 곳에서 차용한 것이며 영어는 로마 알파벳을 기본으로 하여 여러 시대를 거치고 덧붙여지고 바뀌어 지금에까지 이르렀다. 기호는 사회적 규약을 통해서 의미를 얻는데, 글쓰기(writing)도 어떤 집단의 사람들이 사용하기로 결정한 상징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글은 커뮤니케이션 도구이며,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잠재적으로 영향을 끼친다. Leonard Bloomfield와 같은 전통언어학자들은 말을 기록하는 수단으로서 글을 정의한다. 그는 글은 언어의 형식이라 볼 수 없으며, 말을 눈으로 보이게 할 뿐이다라고 말하며 말의 우월성을 주장했다. 그러나 현대 이론가들은 글이 단순한 말의 수단이라는 의견에 반대하며, 오히려 글은 말을 반영하는 거울이라고 주장한다. 중세시대 만 해도 성경을 접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읽어주는 것을 듣는 것으로만 가능했다. 프로테스탄트의 혁명 이후에 하나의 글을 소리내서 읽는 것(낭독) 또는 눈으로 읽는 것(묵독) 이렇게 두 가지 방법으로 성경을 직접 읽을 수 있게되었다. 20세기에 와서 텍스트를 낭독으로 읽는 것은 점차 사려졌지만, 글의 음성적인 면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중요하다. 우리가 언어를 배울 때 먼저 말을 배우고 말하면서 글쓰기를 하게 되는 것을 보면, 말하기와 쓰기가 아주 별개의 의사소통 영역이라고 보기 힘들다.


읽고 쓸 줄 아는(literate) 사회에서 커뮤니케이션은 직접 만나는 대면커뮤니케이션에서 말하는 것(speech)과 보는 것(seeing)그리고 시간과 공간이 떨어진 상황에서 쓰는 것(writing)과 보는 것(viewing)으로 나눌 수가 있지만, 이조차 명확히 구분은 힘들다. 새로운 기술이 구어와 문어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우리는 멀리 떨어진 사람과도 전화를 통해 이야기(speech) 할 수 있고, 문자메시지를 실시간으로 보내면서 이 영역들을 넘나든다. 이메일은 기존의 커뮤니케이션 도구들을 대체하며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  보호막(protective cover)을 제공해준다. 우리는 무성화(de-voicing)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메시지 뿐 아니라 매체를 선택하여 사회적 거리를 조정할 수 있다.


Walter Ong은 문자의 발명은 사고의 변화를 일으키는 기술이라고 주장했지만 이는 어떤 언어가 다른 언어들보다 우월하다는 것으로 제국주의 시대에 악용되었다. 근대의 언어학자들은 언어가 생각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에 반대하며, 모든 언어는 평등하게 인지적 범위를 반영할 수 있으며 모두 복잡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Great divide theory”는 비문해인(non-literate)과 문해인(literate)은 다르게 사고한다는 견해이다. 이것보다는 약하지만, “continuity theory”도 구어와 문어 사이에 어느 정도 차이가 있다고 보는 견해이다. 논리적인 생각(logical thought), 합리성(rationality), 문명(civilization)같은 것들이 문어에 수여된 것들이었다. Patricia GreenfiledJerome Bruner는 문자가 인지개발을 촉진한다고 하였으며, ScribnerCole은 실험을 통하여 이중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bilingual)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언어 구조나 세부사항에 민감하며 비슷한 의미의 문장을 분석하는 것과 모호성을 감지하는 것, 잘못된 문법을 수정하는 데 뛰어난 능력을 가졌다는 것을 증명했다. 또한, 사고에 있어서 읽고쓰는 것(Literacy)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것은 알파벳이다. I.J. Gelb은 알파벳이 인류 역사상 문명의 진보에 가장 큰 공헌을 했다고 주장했고, Eric Havelock은 글을 쓰는 시스템이 논리적, 역사적 사고를 가능하게 하였기 때문에 알파벳 덕분에 그리스 철학이 출현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이 알파벳이 다른 언어보다 우월하다는 증거가 없다며 반박하기도 한다. 인쇄 기술과 미디어 효과 측면에서 보자면, 1979Elizabeth Eisenstein은 인쇄기술을 유럽 근대에서 변화의 주체(agent of change)로 정의하며 사회 전 분야에 영향을 끼쳤다고 말했다. Marshall McLuhan은 인쇄기술이 인간의 사고와 사회 조직을 개혁하는 혁명 중 하나라고 주장했다.  McLuhan은 인쇄혁명이 인간을 문자인간(typographic man)으로 변모시켰다면,  최근 미디어 혁명이 인간을 그림인간(graphic man)으로 변모시켰다고 주장하며 미디어에 대한 그의 선지각을 보여주었다. 독서 효과의 측면에서 보자면, David Olson은 글(writing)이 인지에 영향을 준다고 주장했다. 그는 글(writing)이 사고에 미치는 효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텍스트 그 자체가 아니라 텍스트가 읽히는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음성적 커뮤니케이션은 사람들을 한데 묶어주었지만, 프린트가 사람들을 격리시키는 미디어인 것 처럼 책은 다른 사람들에게서 스스로를 격리하는 개인화된 미디어가 되었다. 사이버 스페이스의 효과 측면에서 보자면, Sven Birkerts는 기술이 우리가 커뮤니케이션 하는 방법의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킨다고 우려했다. 컴퓨터와 상호작용하는 것은 문어적이지만 구어적인 방법과도 공통점이 있다. 우리는 Walter Ong이 지적했듯이 문자문화가 다시 구술문화로 회귀하는 제2의 구술성에 진입한 것이다. 사람들은 더이상 글로 적은 것이 영원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으며, 논리적으로 분석하려 하지 않고, 저자와 독자간의 거리도 존재하지 않으며, 조직에서 개인주의를 강조하지도 않는다. McLuhan이 이 Wired generation에 대한 선지각을 가졌던 것이다.


열 명의 장님이 각자 코끼리를 만지는 것 처럼, 학자들 사이에서도 말(speech)과 글(writing) 차이점을 이야기할 때 의견을 일치하기가 어렵다. 이에 관해서는  언어학적 논의(Linguistic Agenda), 역사적/인지적 논의(Historical/Cognitive Agenda),  민족지학상 논의(Ethnographic Agenda), 기술적 논의(Technological Agenda), 교육학적 논의(Pedagogical Agenda) 이렇게5가지 다른 논의 사항이 있다. 또한  말(speech)과 글(writing)을 바라보는 세 가지 관점은 두 가지가 서로 양립한다는 반대 관점(Opposition View), 이분법을 연속적으로 수정해 나가며, 실제 사용조건에 따라 스펙트럼 상에서 위치가 결정된다는 연속적 관점(The Continuum View), 그리고 서로 기능이 교차한다는 교차적 관점(The Cross-Over View)이다. 역사 속에서 언어의 발전 과정을 조명하면서, 구어와 문어가 혼합되고 그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것으로 인해 더 풍부한 언어표현이 가능해질까? 그 풍부함을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까?



Comments

 

문자와 인쇄술의 발명은 구술문화에서 문자문화로의 전환을 초래했고, 인터넷의 발달은 다시 구술문화와 문자문화가 혼합되며 구술문화로의 회귀, 또는 제 2의 구술문화 시대를 열고 있다고 한다. 구어의 특징은 단순히 음성적으로 생각을 전달하는 것에만 있지 않다. 말을 하는 동안에 전달되는 비언어적인 의사소통, 예를들어, 눈 마주침(eye-contact), 손짓(gesture), 얼굴의 미세한 근육들이 만들어내는 표정, 목소리의 톤과 말하는 속도 같은 것들이 의미를 결정한다. 또한 말 하는 공간의 분위기, 시간 등 주변 환경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우리는 그것들을 읽어내고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한다. 그러나 인터넷을 통한 의사소통은 구어적으로 텍스트가 변화한다고 해도 그런 다양성을 다 반영해 주지 못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직접 대면하거나 전화 통화하는 것 보다도 텍스트를 통한 전달을 더 편안해 하기도 한다. 또한 서로 간에 일정한 거리를 형성하는 것이 솔직한 대화를 끌어내기도 한다. 예전에 직접 할 수 없는 말을 편지에 담아 전달했듯이, 아니면 성당에서 고해성사를 할 때 신부님과 서로 보이지 않는 막을 만들어 놨던 것 처럼 말이다.

 

이러한 솔직함은 장점이 아닌,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충분한 문자문화 시기를 거치지 못하면서 구술성이 강한 문화가 바로 인터넷 기술과 만났기 때문에 인터넷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이 다른 나라보다 빨리 발전할 수 있었다는 진중권 교수의 논평을 읽은 적이 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강한 구술문화가 인터넷에서 나타나며 논리나 추론이 부족하고 찬양이나 비난 일색이 되며 감정적으로 반응함으로써 진정한 토론으로의 발전을 막고 있다고 비판했다.

 

인터넷이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을 크게 확장시켜준 것은 자명하다. 이 안에서 나타나는 구술과 문어의 혼합이 좀더 옳은 방향을 향해 가기 위해서는 인터넷 안에서도 환경(context)에 따라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일정한 합의가 있어야 할 것 같다. 구어도 친구와 사적으로 하는 대화와 여러 사람 앞에서 연설하는 것이 다르듯이, 인터넷 안에서도 때와 장소를 구분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은 단기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느정도 일정 시간에 걸쳐 문화로서 정립되어야 할 것 이다. 예를 들어, 불특정 다수가 보게 되는 기사 밑의 댓글과 토론 커뮤니티의 글은 미니홈피에서 친구와 사적인 대화와는 구분되어야 할 것이다. 텍스트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의 가장 큰 장점은 말을 내뱉기 전 생각할 시간을 조금 더 갖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send’ 버튼을 누르기 전, 즉 전달되기 전에 수정할 수 있는 권한을 준다. 이러한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여, 인터넷에서의 대화에서도 다른 사람의 감정을 배려하는 언행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Posted by birdk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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