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Virtual Reality to the Virtualization of Reality” by Slavoj Zizek

Summary

프로이드의 꿈 사례인 Irma의 주사에서 프로이드는 꿈속에서 환자인 Irma의 입 안을 바라보고 끔찍함을 느끼지만, 꿈이라는 것을 깨닫고 곧 Symbolic bliss(상징적인 기쁨)으로 전환된다. 우리가 '현실'이라고 부르는 것은  Symbolic bliss 모델 위에서 구성되는 것이며, 사람들은 종종 실재를 가리는 환상으로 도피한다. 이것은 컴퓨터와 연결되는데, 오늘날 이러한 Symbolic bliss의 전형적인 사례가 바로 컴퓨터 이기 때문이다. 컴퓨터는 단순한 도구를 넘어서서, 인간 사유에 대한 기본적 질문을 제기하는 존재이다. 컴퓨터는 사용자와 대화를 통해 작동하며, 다른 기계들 처럼 내적인 과정이 투명하지 않기 때문에 컴퓨터가 기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지만 우리는 컴퓨터가 마치 살아있고 생각하는 존재인 것처럼 취급한다. 단순한 도구적 목적을 넘어서, 사람들은 컴퓨터와 함께 생각하게 되며,  컴퓨터의 사회적인 효과는 위로부터 통제이거나 아래로부터 통제이거나, 통제와 지배의 도구가 된다는 것이다.

 

컴퓨터가 evocatory object(생각할 거리를 주는 존재)로서 기능하는 것의 예가 바로 인공지능문제이다. 인간은 인간 생각의 흐름과 컴퓨터를 비슷하게 만들기 위해 시도하지만,  만약 인간의 지능이 프로그래밍된 컴퓨터처럼 작동하는 것이라면? 컴퓨터가 단지 생각을 시뮬레이션 하는 것임은 분명하지만, 생각의 시뮬레이션과 진짜 생각은 어떻게 다른가? 사람들은 기계는 생각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도, 동시에 생각하는 기계를 개발하려는 연구는 금지하려 한다.

 

인공지능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인간의 생각은 자발적, 창조적이지만 인공지능은 단지 프로그래밍 된 것이며, ‘이해를 할 수 없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인공지능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컴퓨터의 로직은 단지 선형적, 기계적인 논리로 작동하는 것이 아닌 self-reference(자기참조) recursive function(순환함수), paradoxes(역설)로 이루어져,  self-applicable(자기 적용)이 가능하며, 또한 여기서 과학과 예술의 연결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런 아이디어들은 해커들의 문화의 기반이다. 해커들은 normal(정상), bureaucratic(관료적), instrumental(수단적), consistent(일관성), totalizing(전체주의적)인 컴퓨터의 사용에 반대한다. 그러나 해커들이 생각하는 미학은 여전히 regulated universe(규제된 우주)이다. 비디오 게임을 할때 아무리 위험을 느끼고 긴장한다고 해도 현실세계의 긴장과는 차이가 있다. 그것은 컴퓨터 안에 일관적인 규칙이 있기 때문이다. 컴퓨터 게임 안의 inconsistent(비일관성)은 현실의 삶과 같을 수 없다.  컴퓨터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한 세계를 상상한다. 우리가 규칙을 정하며, 이 규칙은 모두 적용된다. 그 세계는 그 자신 안에서 일관적이어야만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서 the real(현실,실재)가 배재된다. 컴퓨터는 비일관적인 타자인 여성이 아니라, 일관적인 타자, 비인간적인 파트너인 것이다. 아이가 컴퓨터와 이야기를 나누고, 컴퓨터 게임에 빠지는 것도 부자연스럽고 외설적이며, 컴퓨터와 함꼐 유년기는 순수를 상실한다.

 

일관적이며 regulated universe(규제된 우주)인 컴퓨터와 시스템의 inconstant(비일관성)을 잡고자 하는 해커의 모순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 그것은 inconstant(비일관성)self-reference(자기참조)의 두 가지 차원을 구분하면 된다. 해커가 컴퓨터 시스템에서 찾으려고 하는 nonconsistency(비일관성)의 지점, 즉 시스템이 self-reference에 갖혀서 원을 그리게 되는 지점은 regulated universe의 기본적인 일관성을 건드리지 않는다. 따라서, 해커가 도달하는 self-reference(자기참조)는 일관적(constant)self-reference이다. self-reference만으로는 컴퓨터가 비일관성을 가진 존재로 볼 수 없는 것이다.  

 

이는 Hegelbad infinityproper infinity 구별로도 설명할 수 있으며 컴퓨터의 self referencebad infinity로 볼 수 있다. 영국의 모든 사물이 표시된 정확한 영국의 지도에는 지도 자신의 위치 역시 작아진 축척으로 표시가 되며, 또 이 지도 속의 지도에는 더 작아진 축척으로 지도 속 지도 위치가 표시되고 이것이 영원히 반복된다. 이것이 바로 bad infinity의 예다. 그러나 이 역설의 다른 판본인 proper infinity 에서는 영국의 정확한 지도를 만드는 것은 영국 자체가 자신의 지도로 쓰일 수 있다고 제안하기 전까지 결코 완벽하게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땅이 그 자체로 자신의 지도며 자신의 타자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subject(주체)를 끌어낼 수 있으며, 컴퓨터의 self-reference에서는 지정된 사물이 그 자체의 기호가 되는 지점, 즉 자신이 기호로 변화기 시작하는 turnaround 지점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에 컴퓨터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컴퓨터가 생각하지 않는 이유는 reverse metaphor의 논리로 나아가야 한다. 인간 뇌를 모델로한 컴퓨터 대신, 우리가 피와 살로 만들어진 컴퓨터로서 인간의 뇌를 생각하는 지점 말이다

 

컴퓨터가 만들어낸 가상현실은 하나의 semblance(외관, 겉모습)이다. 그것은Irma꿈에서와 같이 주체를Symbolic bliss(상징적인 기쁨) 넣으면서 실재를 배재시킨다. 가상 현실의 궁극적 교훈은 가장 진실된 현실의 가상화에 있다. 가상 현실의 mirage(신기루) 의해 진짜 현실은 자신의 외관,  순수한 symbolic construct로 남게 된다. "Computer doesn’t think" 사실은 우리가reality 접근하기 위해서는 'Something must remain unthouhgt' 대가를 치뤄야 하는 것임을 의미한다.

 

Comments


이 글은 Slavoj Zizek이 정신분석학적으로 '가상현실'에 대해 바라본 것으로, 컴퓨터가 제공하는 가상현실은 현실을 가상적으로 반영하여, 진정한 실재를 보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는 점을 이야기 한 것이 아닐까 하고 이해했다. 진정한 실재가 가상현실처럼 아름답게 포장되어 있거나, 또 마음을 편안하고 행복하게 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육체적 정신적 위안과 편안함에 머무르기 보단 진실을 추구하려고 하는 점이라면, 그의 주장을 귀담아 들을 만 하다.

 

흥미로웠던 점은 인간의 특성 특히 여성의 특성을, inconstant(비일관성)으로 보고 컴퓨터는 이를 절대로 터득할 수 없다고 본 점이다. 그리고 constant (일관적) 존재, 비인간적인 파트너인 컴퓨터와의 대화는 어린아이의 순수를 위협하는 것으로 바라보았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 글이 쓰여졌을 시점에는 없었겠지만, 우리는 현재 컴퓨터와의 대화가 어느정도 가능하다바로, 예전의 MSN 채팅이었고 지금도 앱으로 나온 심심이, 아이폰의 Siri기능, 퀴즈게임쇼에 나갔던 컴퓨터 왓슨(Watson) 같은 것들이다. 처음에는 재미있어서 이것 저것 이야기를 해보지만, 이들과 어느정도 대화를 하다보면은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되고, 좀 지나면 흥미를 잃는다. 이는 이 프로그램들이 누군가가 지정해 놓은 법칙에 의해서 이야기 할 수밖에 없으며, 사람들의 아주 복잡 미묘한 심리와 유머등을 이해하고 받아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컴퓨터에 그러한 복잡성까지 모두 입력되었다고 친다면, 대화는 좀더 흥미롭게 진행될 수 있겠지만 Zizke은 아마도 그것으로 컴퓨터를 생각하는 존재로 볼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

 

The fact that “the computer doesn’t think” means that the price for our access to “reality” is also that something must remain unthougt.” 이 글의 마지막 문장은, 우리가 진정한 현실(실재)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자기참조의 덫에서 벗어나는 시점, 즉 무한의 반복을 멈추고, 자기 자신을 그 속에서 빼내어 환기하는 시점이 필요하다는 말이 아닌가 한다. 세 번이나 반복해서 읽었는데도 아직 확실한 이해가 부족하고,  Zizek이 주장하고자하는 바는 아직 어렴풋하다. 앞으로 이에 관해 좀더 공부가 필요할 것 같다

Posted by birdk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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