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양한 미래들에게(모든 미래들이 아닌)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을 남긴다.”

     보르헤스의 소설 “The Garden of Forking Path”는 짧은 하나의 단편 소설이지만 마치 텍스트 뒤에 보이지 않는 텍스트들이 존재하는 것처럼, 그것이 무한하게 확장되어 있는 느낌이 들었다. 정확하게 개념을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무한하게 뻗어나가 그 끝을 볼 수도 없고 보려고 하는 시도조차 무의미한 우주의 이미지라고 해야 할까.

     소설을 읽으면서 흥미로웠던 것은 이 소설은 다층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겹겹이 쌓인 구조 안에 깊숙이 들어갔다가 다시 쑥 빠져나오는 순서로 되어있다는 점이다. 유럽전쟁사 라는 책 안에, 유춘 박사의 글이 있고, 그 글 안에 알버트와 유춘의 대화가 있고, 그 대화 안에 유춘 박사의 외조부인 취팽의 미완 소설이 나온다. 알버트와 유춘의 대화가 끝나고 유춘은 알버트를 살해하게 되며, 다시 그것이 유럽전쟁사 안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 사건이었는지를 알게 된다. 안쪽으로 들어갔다가 그 안의 겹겹이 쌓인 층위들을 경험하고 빠져나오는 듯 한 느낌이었다. 

     알버트와 유춘이 나누는 대화 중에, 알버트는 취팽의 소설에 대해서 연구하며 한 권의 책이 무한한 책이 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다고 말한다. 마지막 페이지와 첫번째 페이지가 동일해 무한히 계속될 수 있는 그런 순환적인 원형의 책, 화자가 이야기를 하고 있고, 그 이야기 속에 화자가 이야기하는 것이 등장하게 되는 천일야화 중간의 하룻밤 이야기, 아버지로부터 아들로 상속되는 책에서 각 후손이 새로운 장을 덧붙이거나, 정정하는 작품(플라톤적이라 칭하는)이 그것이다. 그러나 한 장의 편지를 발견하며, 취팽이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은 소설에서 등장인물이 마주하고 있는 일들이 선택에 따라 다른 미래가 공존하며, 또 그 미래에서 다른 미래가 갈라지고, 이렇게 끊임없이 갈라지고 여러 가지 미래의 시간이 무한하게 증식해 간다는 것이다.  

     알버트는 취팽의 소설을 이야기하며, 미로의 길들은 한 차례, 한점으로 모이게 된다고 했다. 알버트와 유춘의 만남과 그 만남에서 취팽의 소설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 지점이 바로 미로가 한 차례 만나는 지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한 점의 순간 유춘은 이상한 환상을 느끼게 되는 것이 아닐까. 바로 시간이 두 개로 갈라지기 직전에 말이다. “바로 그 순간부터 나는 내 주변과 나의 깜깜한 몸뚱이 안에, 눈에 보이지 않고 손으로 만질 수 없는 어떤 것들이 득실거리고 있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혔다.” 취팽은 알버트를 살해하게 되지만, 다른 시간 속에서는 알버트를 살해하지 않고, 또한 유럽전쟁사도 다르게 쓰일 터이다. 유춘은 교수형을 받았다고 했는데 어떻게 살아남아 칭따오 대학의 영문학 노교수가 되었는지도 설명되지 않지만,  다른 시간 속에서 유춘은 죽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소설을 읽은 후, 보르헤스의 소설이 왜 하이퍼텍스트와 연결되는 지 조금은 이해가 간다. 우리는 웹 안에서 무한히 링크된 텍스트의 구조 안에 한 단면을 보게 되지만,  그 뒤의 무한한 구조에 대해 어렴풋이 느끼고 있다. “The Garden of Forking Path”에서 말하는 “무한한 책” 그리고 이 소설 자체가 실현시킨 무한성을 우리는 웹에서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것을 직접적으로 체험하게 되는 것은 다름 아닌 게임이 아닐까 싶다. 게임에서 여러 사용자들에 의해 하나의 캐릭터가 다양한 결말을 얻게 되며, 게임 개발자가 정해놓은 결말 중에 하나에 도달하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MMORPG 게임 같은 경우에는 어느 경우에도 같지 않은 결말을 얻게 되기도 한다.  이렇게 요즘 게임이나 E-book에서 시도되는 사용자가 스토리를 선택하여 다중결말이 나오게 되는 인터렉티브 스토리텔링의 구조도 이러한 “무한한 책” 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보르헤스가 생각하는 ‘시간’이란 선형적으로 흘러가는 하나의 절대적인 흐름이 아니라,  무한히 갈라지고 뻗어나가는 촘촘한 그물망이다. 그럼에도, 한 인간으로서 인지하고 경험할 수 있는 세상은 하나의 길 뿐이라는 점이 슬프게 느껴진다.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읽으며 위안을 삼아야겠다. 


가지 않은 길   - 로버트 프로스트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 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 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 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 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Posted by birdk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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